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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본문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보통의 성연 2017. 10. 6. 16:10

읽어볼 만한 평론

 

대립적 세계관과 미학 - 김병익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2278&cid=41708&categoryId=41736

 

 

 

 

 

 

낭만, 현실, 사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윤호 들여다보기-

 

성연

 

 

 

 

낭만(roman)이라는 말은 조소가 어려있다. 낭만은 황홀하고 환상적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훌쩍 떠나 도착한 밤바다, 벅차오르는 유럽 여행, 해질녘 조용한 거리에 울리는 기타연주 등등 생각만해도 애틋하고 기분이 좋다. 그러나 낭만은 '우리의 일상, 현실에 존재하기 힘듦'이 그 본질이며 특징이다. 매번 사랑하는 연인과 밤바다를 갈 수없고, 유럽여행을 밥먹듯 떠날 수 없으며, 내 마음을 울리는 기타소리를 우연히 듣는 일은 일상에 계속될 수 없다. 만약 이것이 일상이 된다면 이들은 더이상 낭만이 아니다. 이 점으로 하여금 낭만은 더욱더 애틋할 터이다.

 

 

<난쏘공>에서는 모두가 잘 알다시피  난장이들의 열악한 삶과 노동 환경을 드러내는 문제적 작품이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을 비판적으로 그리는 리얼리즘 소설이다-라고 단순하게 일컫기엔, 파격적이고 뛰어난 문학적 형식을 갖추고 있다. 연작 서술기법, 동화적 모티브, 초점인물의 전환, 작품 곳곳의 스며든 알레고리가 더욱 작품을 빛나게 한다. (이이체 글에서도 언급된 '알렙') <난쏘공>은 서술방법에서 부터 낭만적 환상과 실제를 뒤섞어 카오스적 세계를 구성한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읽어내기 어려운 부분이 군데군데 서려있다. 그러나 자세히 서술을 따라 가다보면 작가는 어느새 세계에 대한 우리의 기존 판단을 전복시키고 그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낭만의 세계(달나라와 릴리퍼트읍-사랑과 자유 기쁨 평화가 넘치는)가 현실과 대립될수록 소설의 비극은 커지는 것이다.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상상과 낭만의 <클라인씨의 병>의 세계와 달리, <뫼비우스의 띠>의 세계에는 구분과 대립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난장이 가족들과 그 이외의 유력자들은 끝없는 갈등과 파멸에 이른다. 이러한 세계에서 윤호는 안과밖을 넘나드는 인물로 등장한다. 윤호는 부유한 집의 자식이다. 윤호의 아버지는 윤호를 A대학 사회계열에 보내기 위해 지섭을 가정교사로 데려왔다. 지섭은 학생운동을 하다 A대학에서 짤리게된 수재로 암시된다. 달나라의 세계에 대해 지섭은 윤호에게 가르쳐주고, 윤호는 새로운 인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인물이다. (이후 지섭은 b대학 역사학과를 가고 싶어한다) 또 지섭은 윤호에게 우주인을 만나게 해 주겠다며 윤호를 난쟁이와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자신의 동네로 데려가기도 한다. 이후 윤호는 무언가를 느꼈고 대학에는 떨어졌으며 지섭은 결국 쫓겨나게 된다.

 

 

 

(...) 그때만 해도 윤호는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사실에만 충실했다. 지섭은 미소 머금은 얼굴로 대기권 밖에서의 천체 관측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달에 세워질 천문대에서 일할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달은 황금색의 별세계였다. 그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나 끔찍하다고 했다. 그의 책에 의하면 지상에서는 시간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약속과 맹세는 깨어지고,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눈물도 보람없이 흘려야 하고, 마음은 억눌리고 희망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일 끔찍한 일은 갖고 있는 생각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일이다. ... 그날 밤 윤호는 우주인이 창 밑에 와 유리문을 두드리는 꿈을 꾸었다. 벽돌 공장의 굴뚝 위에 올라가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난장이의 꿈도 꾸었다. 다음날 학교 수업을 어떻게 받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3)우주비행, 조세희 소설집, 이성과 힘 67p

 

 

 

 

 

윤호는 학원에 나가 강의를 받고 특수한 그룹 과외를 받는다. 그 곳에서 소년들은 한과목에 이십만원 짜리 과외 수업을 받고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와 대비되는) 자가용으로 학교를 가고, 모여서 섹스 필름을 보고 여자친구와 호텔로 자러 다닌다. (뛰어난 수재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중퇴한 난장이 자식들의 삶과 역시 극명히 대비된다) 이때, 지섭과의 만남이 아버지로 좌절되어 삶이 무료해질 때 새로이 은희를 만난다. 은희는 윤호에게 유일하게 맑고 깨끗한 소녀로 묘사된다. 윤호는 그녀를 사랑한 것이다. 그러나 윤호는 이 그룹 과외 무리의 우두머리격인 인규로부터 은희에 대한 관심을 끊겠다는 조건으로 시험 답안지를 보여 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결국 윤호는 인규에게 답안지를 보여주지만, 자신의 이름과 수험번호를 인규와 똑같이 작성하는 등 마지막 항의행동을 한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낀 윤호는 자살하기 위해 아버지가 숨겨둔 권총을 찾는다. 그 때 은희가 윤호를 방문하고, 윤호는 은희에게 권총을 쏴 자신을 달나라로 보내달라고 한다. 그러나 은희는 권총을 쏘는 대신 어머니가 없는 윤호를 어머니처럼 두 팔로 감싸안았다.

 

 

 

 

"나를 쏴." 윤호는 말했다. "네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벌써 끝났을 거야. 이제 책임을 져야 돼. 그렇지만 내가 아주 죽은 거로 믿지 마. 달나라에 가서 할 일이 많아. 여기서는 무엇 하나 이룰 수가 없어. 지섭이 형이 책에서 읽었던 대로야. 시간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약속과 맹세는 깨어지고,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여기서 잃은 것들을 그곳에 가서 찾아야 돼. , 망설이지 말고 쏴." 윤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 은희가 겨냥한 총 끝을 그는 보았다. "그럼 나를 위해서 한 가지만 도와줘." 하고 은희가 말했다. "우주인을 만나면 내 답안지를 훔쳐가지 말라고 해." 은희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다. 윤호는 온몸의 힘을 잃었다. "이제 쏴." 다시 말했다. 은희는 권총을 든 채 외투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그 안의 원피스의 지퍼를 내렸다. 권총을 책상 위에 놓고 팔을 내리자 알몸이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처럼 다가가 눈물로 범벅이 된 윤호의 얼굴을 가슴과 두 팔로 감싸안았다. 지섭이 그날 난장이네 집에 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 윤호는 몰랐다. 난장이와 그의 식구들을 조각마루에 앉아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들은 말 한마디가 없었다. 윤호는 지난 이 년동안 자기가 무엇을 잘못을 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3)우주비행, 조세희, 이성과 힘 78-79p

 

 

 

 

 

 

윤호는 은희와 실존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그러한 그들의 사랑은 이후 난장이네 가족들에게로 확대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이후 (6)궤도회전에서 만난 경애와의 에피소드에서 윤호의 변화가 한 겹 드러난다. 여기서 경애는 강방직의 소유주의 손녀다. 윤호는 자신을 좋아하는 경애를 따라서 십대 노동에 관한 토론 모임에 참가하였고 그곳에서 난장이 가족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난장이 가족에 대해 전혀 죄의식도, 관심도 없다. 이후 윤호는 이 상황에 화가 나고 경애를 고문하듯 몰아부친다.

 

 

... "많은 죄를 지었어. 그런데 이상해. 한 가지도 말을 할 수가 없어." "생활 전체가 죄였기 때문야." 윤호는 다시 보이지 않는 말뚝을 돌렸다. "아파, 오빠." 처음으로 경애가 말했다. "그러니까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누워서 오빠를 생각하고는 했어. 이게 나의 죄야." "너의 잠자리는 늘 따뜻했지? 오십년생 굴피나무까지 얼어터지게 한 지난 겨울, 네 방의 온도는 몇 도였지?" "몰라." "넌 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고 살았지? 목욕을 하고 싶으면 언제나 네 방에 딸린 목욕탕에서 목욕을 할 수 있었지? 너는 잠을 자다 춥고 배고파 깨본 적 없지? 그런데 은강방직 공장에 나가는 난장이 아저씨의 딸은 어땠는지 아니?" "몰라." "공장 식당에서 보리가 더 많은 밥에 신 김치, 무청을 말려 끓인 시래기 국을 먹고 살았어. 기숙사 방안 온도는 영하 삼도였다구. 그 나쁜 식사를 하고, 그 무서운 잠자리에서 눈을 붙이며 난장이 아저씨의 딸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아니?" "몰라." "값싼 기계 취급을 받았어, 인간이." "난 오빠의 그 말을 모르겠어." 힘없이 경애가 말했다. "알게 될거야." 윤호가 일어서려고 하자 "싫어, 오빠!" 경애가 소리 쳤다. "열일곱 살 짜리 계집에가 옆집 남자애를 생각한 것은 죄가 아냐." 고문리가 말했다. "난 몰랐어." 경애가 말했다. "그게 너의 죄야. 윤호가 말했다. (6)궤도회전, 조세희, 이성과 힘 175p-177p

 

 

그 후 경애는 자신의 할아버지 묘비명을 직접 쓴 종이를 윤호에게 건네준다. '화를 쉽게 냈던 무서운 욕심쟁이가 여기 잠들어 있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그는 죽었다. 평생을 통해 친구 한 사람 갖지 못했던 어른이다. 자신은 우리 경제 발전을 위해 큰 업적을 남겼다고 자랑하고는 했으나 국민 생활 내실화에 기여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가 죽었을 때 아무도 울지 않았다.' 이후 윤호는 자신이 가져야 할 사랑, 존경, 윤리, 자유, 정의, 이상과 같은 과제를 떠올린다.

 

이처럼 윤호는 소설의 대립적 구조 속에 한 축에서 다른 축으로 이동한 입체적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윤호는 지섭의 도움으로 난장이들이 이야기하는 달나라에 가보려고 우주비행을 시작한다. 그들의 궤도를 따라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러한 윤호를 통해 소설에 탐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더욱 공고히 한다. 그런데 윤호가 포착했던 두 세계를 가만히 살펴보면 달나라는 어처구니없는 판타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세계의 누군가에게는 그 낭만이 일상에 발에 채이도록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이 세계는 이렇게 극적으로 대립되면서 다를까? 난장이에 곱추에 앉은뱅이로 태어났기 때문인가? 그들은 육체적인 불구지만, 다른 한쪽은 정신적 불구다. 태어나서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 탐욕자일 뿐이다. 서사를 따라 읽어나가면서, 독자들은 화해할 수 없이 대립되어있는 두 세계를 보며 자연스레 생각한다. 옳고 그름은 무엇이고, 왜 두 세계는 이처럼 충돌하는가? 왜 누군가에게는 발에 채이는 현실이 닿을 수 없는 낭만이 되어 비극이 되는가?하고 말이다.

 

 

낭만적 모티브와 충돌하는 리얼리티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숙연해 진다.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뫼비우스 띠 안에서 절망하지 말자고 <난쏘공>으로 하여금 다시 다짐한다. 시간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약속과 맹세는 깨어지고,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눈물도 보람 없이 흘려야 하고, 마음은 언제나 억눌리고 희망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화해할수 없는 세계들 속에서 언제나 오직 사랑만이 거기에 있길. 우리는 우리의 몫을 조금씩 해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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