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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

자기애와 대상화 본문

일상의 단상

자기애와 대상화

보통의 성연 2020. 5. 27. 22:26

 자기애와 대상화는 한 끝 차이

- 우울에 대한 단상

 

개 인은 시대를 떠나 언제나 존엄했다. 현대 사회는 더욱 만인은 평등하다’, ‘개인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우리에게 쩌렁쩌렁 알린다. 평등한 기회와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다. 성실함은 곧 성취가 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영웅성을 발현하여 자아를 실현하여 부를 얻은 사람들이 우리 곁에 직간접적으로 널려있다.

 

  실제로 어려운 환경과 한계를 뛰어 넘어,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진실히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불우했던 개인이 노력으로 자신의 일상과 환경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갔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를 얻는다. 이러한 자수성가 스토리는 듣기만 해도 마치 내 이야기인 냥, 마음 한편이 뿌듯해진다. 더 나은 나와 더 나은 삶으로의 욕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너도 할 수 있어선전하는 시대. 실제로 어느 때보다 개인에게 교육 기회가 보장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기 개발을 위한 접근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세상은 수많은 갈등론적 요소들도 가세하여 착취와 지배, 차별이 은연중에 존재하여 불평등한 모습이 우리 사회의 한 측면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 개인의 선천적기질적인 요소부터, , 수저론, 계층과 성별 등 수많은 요소가 인간의 기본적인 환경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다양한 매체, 문화가 만들어낸 수많은 이미지와 욕망들이 납작하게 떠다닌다. 원초적인 성 자극, 혹은 남들과 다른 특별함, 화려한 물질들과 부, 심지어 경험들까지도 전시되어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마트폰이 발달함에 따라 손가락 몇 번으로 타인과 자기 자신을 향한 시선은 더욱더 맹렬해 진다. 다양성은 파편화 되어 일차적으로 소비되며 전시 되고, 모든 것은 物性화되어(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건이 되었기에 우리는 많은 것을 수치화 하고 비교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것이 가능한(정확히는 가능해 보이지만 불평등한) 현대 사회에서, ‘는 남과 달라 특별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이미지와 이야기들은 무제한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는 개인의 비대한 에고를 자극하는 동시에 본인을 잘 팔리는 상품처럼 가꾸고 싶은 욕망을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어느 때보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와 시선 속에서 허우적 거린다. 심지어 본인만의 이상적인 취향과 잣대까지 들이 밀며 사는 것이다. 학벌, 매력, 개성, , 외모, 인간관계는 모두 숫자와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이 되어 본인과 주변을 평가하게 된다.

 

  가장 원초적인 연애, 애착 욕구도 이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연인 관계의 남성과 여성은 떠다니는 수많은 자극 속에서 본인이 서로에게 성애적으로 가장 욕망되도록 애쓴다. 남성은 주로 경제적인 지위, , 카리스마 등을 갈망하고, 지배함으로써 본인의 사회적 역할에 더욱 힘을 실어 우월감을 얻길 원한다. 이러한 맨박스 속에서 남성은 소유하고 성취하고 정복하기 위해 존재들을 줄세우며, 뭉개 짓밟고 경쟁한다. (이 모든 것은 특정 성별에게 주어진 문제라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모든 남성과 여성이 그렇다는 생각은 아니다.)

 

 여성은 그러한 남성에게 욕망되어지기를 갈구한다. 그렇기에 여성은 같은 여성을 대결 구도로 두어 질투가 많거나 감정적으로 요구가 많은 피곤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여성이 여러 겹으로 대상화되었으며, 남성에게서 더 잘 팔리는 물건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이다 때문에 여성은 외모와 다이어트에 더욱 매달리며, 시선 속에서 본인의 결함은 계속 쫓아와 자존감을 갉아 먹게 된다. 가령 능력이 뛰어나지만 외모가 못났다거나, 얼굴은 반반하지만 골이 비었다거나, 남성에게 욕망되어지지 않는 것은 큰 하자가 된다. (노처녀 히스테리) 또한 여성은 성경험이 많아질수록 풍부한 교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낡아 헤진 물건이 된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자존감이 화두인 이유가 있다. 이처럼 수많은 시선이 오가며 모든 것이 파편화 되는 상황에서, 개인의 영혼은 상처 받는다. 떠다니는 수많은 이미지와 가능성 속에서 시선을 본인으로 돌렸을 때, 자기 자신은 얼마나 못났는가? 자기 자신은 얼마나 무능하며 매력적이지(욕망 받지) 못하는가? 이런 와중에, 에고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져, 넘쳐 흐른다. , 높은 교육 수준과 수많은 이미지에 대한 분별은 오히려 자기 자신의 생각과 편견, 아집을 만들어 내어 자의식을 맹렬히 생산한다. 이런 와중에 스스로에게 무관심과 평정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자아를 향한 관심은 스스로를 대상화할 높은 개연성을 보인다. 결국 높은 자존심 및 나르시시즘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며 개인은 더욱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쏟고 상처입고 우울감과 수렁에 빠지게 된다. 본인을 계속 들여다본 나르시스가 물에 빠져 죽은 일화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이에, 먼저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습관처럼 쏟아내는 시선과 관심을 걷어내고 주체로 살아야한다. 스스로가 정한 ()을 공고히 지켜낸다. 성취를 위해 노력하지만, 결과는 내 마음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욕망되고 싶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내 온몸을 다 바쳤지만,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 무엇보다 내가 가장 특별하고 대단하고 싶지만, 우리 모두가 존엄하기에 누가 누구 보다 유달리 특별하다거나 대단할 수는 없다. 타인으로부터 오는 무례한 시선은 단호히 걷어낸다. 그것이 좋은 평가나 칭찬일지라도 본인에게 과도하게 영향을 미칠 때는 경계한다. 결국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세우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회 문화, 구조적으로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 무엇보다도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모든 것이 대체되거나 비교, 규졍, 판매될 수 없다는 인간 존중, 인문이 우리에게 자리잡아야 한다. 조금 늦은 사람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늦고 빠름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폭 넓은 포용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또한 지역, 계층, 성별, 학벌, 나이 등에 부여된 character적 의미 과잉을 빼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약자에게는 지원과 지지를 아낌없이 보내려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쉽지 않겠지만, 작은 믿음을 가진다. 우리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며 모든 것이 이대로 괜찮다고. 나의 삶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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